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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책: 인류의 기원: 아담이 현생 인류와 다른점

벌꿀사랑 2024. 5. 27. 17:50

 

 

 

인류의 기원

 

인류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일까? 

성경책에는 아담이 최초의 인간이었다고 나온다. 

 

성경책 창세기에서의 아담은 태초의 인간이다. 

과연 태초의 성경에 나오는 태초의 인간 아담은

과연 현인류와 동일한 인간인가?

과연 우리와 아담이 같다고 말할수 있는가?

 

​넌센스 같은  문제이지만 성경적 질문이기도 하다.

몇가지 문제가 제기 될수 있다.

첫째 인류는 그 누구도 흙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만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오직 아담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 찰흙 인간 아담인가?

아담의 원재로는 흙이다.

현생 인류 그 누구도 흙으로 살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오직 마블 영화 판타스틱 4에 나오는 흙인간 정도가

기억날 뿐이다. 그러니 아담과 현생 인류가

동일 인류라고 말한다면 과연 정당한 것일까?

그러나 여기 또 중요한 문제가 나온다.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에게 또 다른 재료가 첨가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호흡이며,

하나님의 불멸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신비이다.

이것이 흙 아담에게 첨가됐을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단순한 찰흙 인형에서 우리와 같은

살아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다.

피노키오가 나무로 만들어져서

나무 몸을 가졌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신비가 흙을 감싸고 흙에 침투하여

하나님의 모습을 가진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담이 생령이 되었다는 표현이다.

나중에 구약에 나오는 내용중

하나님이 인간이 우리와 같이 되었다는 표현을 통해

인간에게 하나님의 모습이 투영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아담이 현 인류의 모형이 된것은

흙으로 만들어진 시점이 아니다.

생령이 된 시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문제가 발생한다.

 

둘째로, 아담과 하와를 제외하고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태를 통하여 태어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인간의 공통된 요소이다. 

 

그 누구도 잉태의 과정없이 태어나지 않는다.

태에서 양육되어 태어난다는 것은

모두가 배꼽에 탯줄을 달고

양육의 시간을 거쳐 태어났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들은 탯줄을 잘라

개인의 독립성을 부여받고,

배꼽을 당당히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하며 인간임을 드러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배꼽을 드러내고

몸매를 자랑하며 남녀노소 모두 배꼽을 드러내는 것은

내가 인간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담에게는 배꼽이 없었을 가능성이 100%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잉태의 과정을 겪지 않았고,

창조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변화산의 예수님 같은 단번의 변화,

부활하신 주님의 새로운 모습같은 변화가

아담을 아담 답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아담은 또한 분명한 인간이었다.

생령으로서의 아담은 분명한 인류 시초의 시작점이 되고

그의 아이들이 인류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모든 시작은 아담이 맞다.

다만 그 자신이 우리와 조금 다를 뿐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은 흙으로 돌아간다.

생령 아담이 죽었을때,

나는 그가 흙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믿는다.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존재를 붙들던

하나님의 호흡이 사라져서 흙으로 돌아갔다면,

그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라

본질로 돌아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흙으로 창조되지 않은 존재인 사람들도

죽으면 호흡이 떠남과 동시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밟는다는 점은 조금 이상하게 생각된다.

본질이 같다는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아담은 우리와 다른데 우리와 같다.

이것이 이상하지만, 변화라는 관점으로 인류를 바라볼때

아담이 인류의 시작점이 된다는 사실은 믿어진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호흡이라는

신비가 담겨 흙이 생령이 된다면,

우리의 처참한 인생 위에 하나님의 신비의 호흡이 담긴다면,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

인간이 인간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 같은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아담은 인간이다. 하지만 다른면이 있다.

그는 생령이다.

그리고 그 생령, 살아서 움직이는 영적인 존재는

우리 모든 인류를 초대하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새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